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몽 아롱 (문단 편집) == 평가 == >(전략) 실제에 있어서 그들 생전의 영향력이나 명성은 결코 50대 50이 아니었다. 철학서 《존재와 무》, 소설 《구토》로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에 실존주의를 대대적으로 유행시킨 실존 철학자, 평론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로 참여 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고 소설과 희곡에서 두루 성공을 거둔 작가, 그리고 군중 데모, 항의 시위, 공개장 서명 등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나타냈던 극좌파 투사로서의 [[장폴 사르트르|사르트르]]는 정말로 전후 30년간 프랑스 지식계의 교황이었다. 첨예한 정치적 갈등이나 이념의 분쟁 속에서 모든 사안에 대해 사람들은 오늘 사르트르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에 비하면 레몽 아롱의 명성은 보잘것없었다. 명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치욕스러운 보수파의 상징이었다. (중략) 평생 온건하고 [[상대주의]]적인 논조를 유지했던 레몽 아롱은 프랑스의 지식 사회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받았다. 1955년 [[소르본 대학]]에 교수로 들어갈 때는 그가 우익 인사이며 우익 신문인 [[피가로]]의 논설위원이라는 이유로 대대적인 반대 캠페인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레몽 아롱은 [[마르크시즘]]이 세계를 해석하는 절대적 인식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기본 사상을 깔고서, 전후 프랑스가 상당한 정도의 근대화를 이루었고, 생활 수준이 신장되었으며, 사회적 불평등은 축소되었고, 교육 제도도 민주화되었다고 생각하며 과연 좌익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그런 근대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을지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정치란 선과 악의 투쟁이 아니며 좀 더 바람직한 것과 좀 덜 바람직한 것 사이의 선택이라는 것, 그리고 정치를 하는 것이 곧 선을 행하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소련에 대해서는 강제 수용소, 전체주의, 팽창주의를 경계했고, 이와 같은 오류가 스탈린의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라 이미 공산주의의 이론 속에 배태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반공주의자는 개다."[* 당시 [[https://en.wikipedia.org/wiki/Victor_Kravchenko_(defector)|빅토르 크랍첸코(Виктор Кравченко)]]는 전후 최초의 소련 공산당원 망명자로서 소련의 강제 수용소의 실상과 193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최대 1,300만명이 아사한 [[홀로도모르]]를 폭로했다. 그서나 좌파 지식인들은 이렇게 폭로된 소련의 추악한 면을 보고서도 공산주의, 사회주의, 진보 이념을 의도적인 목적으로 훼손하려는 이리 떼(wolf pack)라며 비난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공산당]] 당수인 자크 뒤클로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르트르도 같은 맥락에서 "모든 반공주의자는 개다."이라고 한 것이다. 덧붙여 [[알제리 전쟁]]을 두고 [[알베르 카뮈]]와 대립하다가 절교한 것도 이 무렵이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비앙쿠르([[르노]] 자동차 공장이 있던 파리 교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해서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의식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소련의 수용소 현실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68혁명|68년 5월 혁명]] 때는 비앙쿠르로 달려가 공장 노동자들을 앞에 놓고 선동연설을 하기도 했다. >결국 사르트르와 레몽 아롱의 포폄이 갈린 것은 마르크시즘이라는 유행 사조를 채택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었다. 전후 30여 년간 프랑스는 내각이 수시로 바뀌던 불안한 제 4공화국과 [[드골]]의 강력한 지도 체제 등을 경험하며 계속해서 부르주아 우익 세력이 정권을 담당했지만 지식층의 헤게모니는 마르크시즘 진영이 잡고 있었다. 레몽 아롱이 당했듯, 추악한 보수 반동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그 누구도 자신이 우익임을 표방하지 못했다. [[카뮈]]나 [[메를로-퐁티]]가 그랬듯이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반공주의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한 시대, 한 사회의 주류 사상을 거스르기는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1975년을 전후해서 5월 혁명 때 고등학생ㆍ대학생이던 세대가 갑자기 마르크시즘의 한계와 소련의 죄악을 깨닫고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와 소련 체제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새롭게 발견한 것이 레몽 아롱이었다. 그들은 마르크시즘이 진보의 사상을 독점한 데 대해 반기를 들었으며, 우익과 좌익의 참모습이 무엇인가에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레몽 아롱이 옳았으며, 사르트르는 틀렸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레몽 아롱 개인으로 보면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후략) >---- >- [[박정자(교수)|박정자]](朴貞子) 상명대 명예 교수[* 박정자 교수는 국내에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등의 프랑스 현대철학을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